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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핵심 _ 공부가 열리는 과정

 

율려律呂의 원음이 옴과 훔이다.

그게 태을주太乙呪이다.

 

우주의 본성은 소리와 파동과 빛으로 구성돼 있다.

그 근원은 우주의 중심 소리요 조화 소리인 율려성律呂聲이다.

그 율려 소리는 태극의 음양 이치로 옴과 훔으로 구성돼 있다.

 

명상 _ 픽사베이

수행의 자세

수행공부의 모든 문제는 잡념을 어떻게 끊고 집중하느냐에 달렸다.

다시 말해 보통 수행자의 과정이라는 것은 생각의 불덩어리에 매달려서 그것하고 싸우다가 다 끝장나는 거다.

그러니 잡념이 일어날 때는 한 생각으로 그걸 깨뜨리고 주문 읽는 데 집중해서 몰입을 해야 한다.

마음을 놔 버려야 한다. 집착을 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에 이루지 못한 것, 슬폈던 것, 고생했던 것에 매여 있으면 안 된다.

수행할 때는 과거로부터 자기 자신을 풀어놓고 자유롭게 해야 한다.

이는 과거에서도 벗어나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 같은 것에서도 벗어 나야 한다.

진정한 지금의 나, 여기의 나가 돼야 한다.

'Now and here'로 깨어 있어야 한다.

내가 진정한 주재자의 심법을 갖고, 지켜보는 자, 단지 깨어서 지켜보는 자의 마음으로 해야 수행이 잘 되고, 편안해진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대자연과 합일된 수행, 몰입된 수행이라야 편안함이 찾아오고, 기막힌 체험을 많이 하게 된다.

 

수행할 때 일단은 눈을 지그시 감고 몰입沒入해야 된다.

몰입을 해서 내 몸 자체가 있는지 없는지 할 정도의 경계, 그런 무심無心의 경계로 가야 한다.

일심一心이라는 것은 그런 무심의 경계다.

모든 존재와 한 덩어리가 되어 버린 거다. 이를 혼원지기混元至氣라고 한다.

"혼허입진混虛入眞"

온 우주하고 내가 완전히 한 덩어리가 된게 혼混이다. 그 경계는 텅 비어 있으니 허虛다.

그건 무극의 경계로 들어가는 거다.

이런 것을 이법적으로 강하게 생각으로 깨치면 수행할 때 좀 더 자신감을 갖게 된다.

수행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은 한마디로 혼허입진이 됐느냐, 되지 않았느냐에 달려 있다.

혼허混虛가 되지 않으면 진眞의 세계, 참의 세계에 못 들어간다.

혼허가 되지 않으면 분별지分別智에 떨어지기 때문에 일체가 될 수 없다.

'분별지'라는 건 내 생각으로 분별하는 지혜다. 이로 인해 진정한 도체, 온 우주와 하나가 되지 못한다.

 

수행을 매개하는 것이 호흡이다.

의도적으로 호흡하는 것이 아닌 진식眞息으로 해야 한다.

세밀한 호흡으로 해야 한다.

세밀하다는 것은 호흡의 전 과정 자체를 내적으로 정서적으로 부드럽게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지금 호흡을 조절하고 있다. 내가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를 때 완전한 하나가 되고, 수행이 된다.

 

지극한 허극의 경계. 마음을 비우는 지극한 경계에 들어가면 고요하다.

그 고요함이 지속이 되면 그걸 '허극정독虛極靜篤'이라고 한다. 그 허극정독에 가면 공부가 한순간에 열려 버린다.

그것은 원십자의 영영 좌표를 찍는 거다.

허리를 반듯하게 펴고 의식을 조율해서 영영(0, 0)의 무극 좌표에 앉는 게 중요하다.

생각해 보기! 내 몸에서 영영 좌표는 어디일까요? 

 

공부가 열리는 과정

상단上丹은 신神의 집이다.

머리 자체가 신의 집으로 물질적으로는 수박만 하지만 영적으로는 우리 머리가 우주이다.

우주 자체다. 우주를 담는 것이니 우주보다 더 큰 것이다.

우리 머리는 하늘을 닮아서 둥글다. 그리고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통합된 구조다.

물론 하단下丹도 유와 무가 통합이 되어 있다.

그래서 하단에서 기를 뭉쳐서[원기元氣], 상단의 신과 합일을 해야 그 기운이 강해지고 맑아지고 밝아진다.

그게 바로 공부가 열리는 과정이다.

다시말해 원기를 갖다 자꾸 집어넣고 집어넣고 집어넣고 하면 그 맑은 기氣가 축적이 돼서 신神하고 합일이 된다.

모든 수행修行 공부工夫라는 것은 (상단의) 신神과 (하단의) 기氣를 합일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하단에 집중集中해야 한다.

집중을 해야 주재지처主宰之處가 생겨서 주재, 주인[신神]을 만나 기氣가 뭉쳐진다.

 

정精과 신神 _ 수승화강

 

정단精丹을 금단金丹이라고도 한다.

왜 그러냐 하면, 내 머리에 있는 원신은 불덩어리다. 

그게 아래로 내려가 화생토火生土를 해서 순수의식, 순수한 나의 한 가지 생각이 곁들여져 거기서 토생금土生金을 해서 금단이 형성된다.

金이라고 하는 것은 순수한 빛이다. 하단에 그 빛이 축적되는 것이다.

하단下丹이라는 것은 우주의 기의 빛을 갖다가 축적하는 공부를 하고, 상단도 기를 쌓는 거지만 정화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단精丹은 맑은 기의 빛이 뭉치고, 그 하단의 정精에서 기氣를 생해야 한다.

기를 갖다 위의 상단에 쏘아서 신神과 기氣가 완전히 합일된 공부를 하는 것이다.

 

성性과 심心은 하나다.

우리 머리에는 조화신의 자리, 우리 마음의 본래 모습인 성性이 자리하고 있다.

성은 실제 의식 작용을 하는 마음으로 드러난다. 성性은 체體가 되고, 심心은 용用이 되는 거다.

그래서 性은 心에 의지를 하고, 心은 性을 근원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마음은 분별지分別智가 내재되고 선행되는 그런 마음이다.

'분별지'가 끊어져야 본래의 그 性이 드러난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말하는 그런 마음의 경계에서는 공부가 안되는 거다.

분별지의 경계에 있기 때문에 공부가 안되고, 그 마음이 죽어야 성이 드러난다.

그런데 마음을 뭘로 죽일 것인가?

소리를 지를 것인가, 발로 찰 것인가. 그것은 일체의 사념을 끊으라는 것이다.

 

성性의 용用 자리인 마음에서 온갖 것, 즉 본 것, 들은 것, 겪은 것 등 수백, 수천 가지에 끌려서 의식이 분산되면서 하나가 되질 못한다.

모든 건 하나로 돌아가는 거다. 수행을 통해 하나로 돌아가야 된다.

그 하나를 성性이라고 하고, 무극無極의 자리, 태극太極의 본체本體 자리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참 진眞자 자리다. 性에는 시작과 끝이 없는 거다.

우리 마음의 본체 자리인 성性에서 작동하는 것이 명命이다. 명命은 기氣로 작용을 한다.

命은 조식調息에 달렸다. 호흡을 고르게 해야 한다.

즉 숨결이 고르고 잡념이 끊어진 호흡, 진식眞息호흡을 해야 한다.

우리가 범식凡息에서 진식으로 오려면, 분별지가 끊어진 본래 성의 자리에서 대자연과 하나 된 마음으로 주문을 읽고 호흡을 해야 된다.

 

의식의 문제에서 공부가 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 몸에는 신이 두 개가 들어 있다.

하나는 머리 중앙에 있는 우주 조물주 태허령의 원신元神이고, 또 하나는 심장에 있는 식신識神이다.

다시 말해 우주의 원래 조물주 마음이 우리 머릿속에 들어오면 그걸 성性이라고 하고, 성이 인간 몸에 들어오면 그게 원신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원신은 잠들어 있고, 심장에 있는 식신이 작용한다. 그러니 생각을 끊고 원신으로 하는 것이 수행이다.

이것을 명심하는 만큼 공부가 열 배, 백 배 달라진다.

수행은 원신元神으로 해야 된다.

식신識神으로 읽으면 안 된다. 식신으로 읽는 것은 잡념을 갖는 것이다. 그걸 삿된 사화沙火라고 한다.

수행은 신화神火로 해야 된다. 머리 위에 있는 원신의 불기운으로 호흡해야 된다. 내 몸의 무극의 원신으로 숨을 쉬어야 한다.

심장의 의식 작용, 온갖 생각을 하고, 정서에 매여 있는 의식으로 숨을 쉬는 것은 범식이다.

 

수행이라는 건 최종 결론이 머리 속에 있는 신神과 하단의 빛으로 정화된 기氣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기를 쏘아 올려서 상단의 신과 하나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 하단에서 주문의 빛으로 기를 정화해서 기의 뭉치, 기의 덩어리인 빛을 올려야 한다.

그것을 상단에 집어넣어서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과 기가 합일이 돼서 거기서 진짜 나의 법신을 창조하는 2차적인 빛 덩어리가 되어 폭발이 되면서 신안이 열리는 것이다.

생각을 집중해야 한다.

나의 신과 기를 하나로 묶어 집중해야 한다. 그게 수행 공부다.

수행 공부工夫의 공식은 '나의 정신의 신神과 몸속에 들어온 외기의 기氣를 갖다가 하나로 묶는 것이다.

신과 기를 합일시키는 것이 공부다.

그런데 신은 기를 정화하는 기능이 있고, 기는 신에 순종해서 하나의 중심에 뭉치려고 하는 본능이 있다.

 

광명 _ 픽사베이

 

모든 관건은 의식과 호흡의 문제다.

사자성어로 응신조식應神調息이라고 한다.

응신조식은 한마디로 내 생각, 마음 의식의 신을 가져다가 하단의 감독자, 주재자로서 감응하고, 호흡을 고르게 하라는 것이다.

또한 감성체의 몸이 되는 것도 중요하다. 완성한 감성체의 몸으로 바꾸는 것도 호흡에 달렸다.

이를 위해 하단으로 호흡하면서 깊이 있게 기운을 꽉 채워야 한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충만함을 느끼고, 내쉬면서 비움을 느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내 의식이 하단을 감독해야 한다. 그리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하는 것을 깊고 고르게 해야 한다.

 

수행의 결정타를 날리는 세 가지 관건이 있다.

첫째, 충분한 휴식을 해서 몸의 피로를 풀어야 한다. 잠을 제시간에 자야 된다.

둘째, 섭생을 잘해야 한다.

셋째, 생각을 끊고 무념無念으로 무아의 경계에서 수행해야 한다.

 

한마디로 수행은 마음의 과학이요, 영혼의 과학이며, 나와 우주가 융합해서 하는 초자연과학이다.
수행이란 우리가 기氣를 모아서 그 공간을 채우는 것!
기는 빛이다.
그래서 빛 덩어리, 아주 극미세한 그 기운을 호흡을 통해서, 주문의 조화 성령 기운과 하나 돼서 하단에 몰아넣는 것이다.
다시말해 氣가 주문에 동화돼서 같이 하단에 뭉치는 것이다.

 

** 내 몸에서의 영영 좌표는? 회음

출처 : 「월간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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